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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9.15

스테이킹한 가상자산, 사업자가 파산하면 되찾을 수 있나

서울중앙지법은 8월 19일 스테이킹을 위해 맡긴 가상자산(디지털자산)의 반환을 요구한 고객의 소를 각하(2025가단100270)했다. 원고는 가상자산사업자에게 SOL(솔라나) 4400개를 맡겨 스테이킹 서비스를 이용했다. 회사가 파산한 뒤에는 파산관재인을 상대로 440SOL의 반환을 청구했다. 원고는 SOL에 관한 권리가 자신에게 남아 있고 회사는 스테이킹 업무만 대행했으므로, 해당 SOL은 회사의 채권자들에게 배당할 재산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법원은 원고에게 SOL을 돌려받을 권리 자체가 없다고 판단한 건 아니다. 다만 그 권리는 회사에 대한 일반 파산채권이므로 파산절차에서 행사해야 한다고 보았다. 원고가 요구한 것은 자신이 맡긴 자산을 파산재단에서 제외하여 돌려받는 ‘환취’였지만, 법원은 다른 채권자들과 함께 파산절차에 참여해야 하는 경우로 판단한 것이다.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 제424조는 파산채권을 파산절차에 의해서만 행사하도록 하고 있다. 반면 제407조는 채무자에게 속하지 않는 재산을 환취하는 권리가 파산선고로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규정한다. 환취는 다른 채권자보다 먼저 배당받는 것이 아니라, 채무자에게 속하지 않는 재산을 파산재단에서 제외하여 돌려받는 것이다.
 

따라서 환취가 인정되기 위해서는 회사에 반환의무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는 부족하고, 반환을 요구하는 재산이 회사에 귀속되지 않는다는 점까지 인정되어야 한다. 본 판결 또한 계약에 따른 채권적 청구권이라 하더라도 회사에 귀속되지 않는 재산의 반환을 목적으로 한다면 환취권의 기초가 될 수 있다고 보았다.
 

법원은 우선 SOL이 민법상 물건이나 유가증권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물건이 아니므로 소유권에 기한 반환청구를 부정하였고, 유가증권도 아니므로 여러 고객의 증권을 섞어 보관하더라도 고객에게 공유지분을 인정하는 증권 혼장임치 법리도 적용하지 않았다.
 

스테이킹 계약은 보관을 맡긴다는 점에서 임치와 비슷하지만, 그 대상이 물건은 아니므로 ‘혼장임치 유사 비전형계약’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원고의 반환청구권은 계약의 해지에 따른 채권적 청구권이라는 설명이다. 
 

이어 법원은 고객들의 SOL을 집금하여 스테이킹한 실제 운영 방식에 주목했다. 원고가 맡긴 SOL은 집금계좌로 이전되면서 특정성을 잃었다고 판단했다.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이 위탁받은 자산과 동일한 종류·수량의 자산을 보유하도록 하는 점도 반환청구권을 종류물채권과 유사하게 보는 근거로 삼았다.
 

약관에 디지털자산에 대한 권리가 회원에게 있다는 문구가 있었지만, 법원은 이를 장래의 반환채권을 정한 것으로 해석했다. 결국 원고의 청구는, 회사에 속하지 않는 재산의 반환을 요구하는 경우라고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러한 판단에서 가장 의문이 드는 부분은 동종·동량 보유 의무를 해석한 대목이다.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 제7조 제2항은 사업자가 자신의 자산과 이용자의 자산을 분리하여 보관하고, 나아가 위탁받은 것과 같은 종류·수량의 자산을 실제로 보유하도록 정한다. 이 두가지 의무를 동시에 두고 해석하면, 고객 자산을 따로 관리하면서 부족분이 생기지 않도록 보유하라는 취지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곧바로 고객은 회사에 대한 반환채권만 가진다는 결론이 나오는지는 의문이다. 무엇을 얼마나 돌려주어야 하는지와 보관 중인 재산이 누구에게 귀속되는지는 구별해야 하기 때문이다. 위의 분리보관 규정만으로 환취권이 당연히 성립하는 것은 아니지만, 동종·동량 보유 규정이 환취권을 부정하는 근거가 된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생각된다.
 

여러 고객의 자산이 섞였다는 사실도 그 자산을 회사의 책임재산으로 취급할 충분한 이유가 되는지 따져봐야 한다. 원고가 입금한 개별 SOL을 다른 고객의 것과 구별하기 어렵더라도, 고객들을 위해 보관한 자산 전체를 회사의 고유자산과 구별할 가능성은 남아 있다.
 

그렇다면 개별 단위의 식별이 가능한지만 볼 것이 아니라, 고객용으로 보관한 자산의 범위와 각 고객의 권리를 장부 및 거래 내역으로 확인할 수 있는지도 검토해야 한다. 집금으로 개별 자산의 특정성이 사라졌다는 판단과 고객 자산 전체에 대한 권리를 인정할 수 없다는 판단은 같지 않다. 
 

비록 디지털자산이 유가증권은 아니더라도, 증권 혼장임치 법리는 이 차이를 설명하는 비교 근거가 된다. 이 판결이 인용한 대법원 2008다17212 판결(2008년 11월 27일 선고)를 보면, 고객은 동량의 증권을 반환받을 채권과 혼장된 증권 전체에 대한 공유지분을 함께 갖는다.
 

자본시장법 제312조 제1항도 계좌부에 기록된 증권의 종류·종목·수량에 따라 공유지분을 가지는 것으로 추정한다. 물론 증권에는 이러한 권리를 뒷받침하는 법체계가 있으므로 그 결론을 SOL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다만 자산의 혼합과 동량 반환의무가 고객의 재산적 권리와 양립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약관 해석에도 설명이 더 필요하다. 약관은 해당 디지털자산에 대한 권리가 회원에게 있고 회사는 스테이킹 업무를 대행한다고 정했다. 법원은 이를 단순한 반환채권에 관한 조항으로 해석하면서 그  근거로 회사로의 관리권 이전과 회원의 출금 가능 자산에서 제외되는 점을 들었다. 그러나 타인의 자산을 보관하거나 업무를 대신 수행하는 경우에도 관리권은 이전될 수 있다.
 

스테이킹을 위해 출금을 제한했다는 사실 역시 회사가 그 자산을 자기 사업에 사용할 권한까지 받았다는 뜻은 아니다. 회사가 고객의 계산으로 정해진 업무만 수행하는 경우와 자기 계산으로 자산을 사용·처분할 권한까지 받은 경우를 구별해야 한다. 법원은 약관에 고객의 권리를 유보하는 문구가 있는데도 고객에게 반환채권만 남는다고 해석한 이유를 더 구체적으로 설명할 필요가 있었다.
 

고객에게 자산을 분리하여 보관한다고 설명하면서도 사업자가 파산했을 때 어떤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지 예측하기 어렵다면, 수탁업에 대한 혼란이 예상된다. 이번 판결이 모든 수탁 디지털자산의 법적 지위를 확정한 것은 아니지만, 계약과 보관 방식에 관한 해석에 따라 고객이 자산을 되찾을 수 있는지가 달라질 여지는 드러났다. 이러한 불확실성이 계속된다면 입법으로 고객과 사업자, 사업자의 채권자 사이의 권리관계를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유럽연합(EU)의 미카(Markets in Crypto-Assets, MiCA) 제75조 제7항은 수탁자산을 사업자 자신의 자산과 분리하여 보관하도록 할 뿐 아니라, 적용 법률에 따라 법적으로도 분리하여 사업자가 도산하더라도 그 채권자가 수탁자산에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도록 규정한다. 보관 방법과 도산 시 법적 효과를 각각 정했다는 점에서 국내 입법에도 참고할 만하다.
 

입법론적으로는 먼저 단순히 보관·대행을 맡긴 거래와 사업자가 자기 계산으로 자산을 사용하도록 넘긴 거래를 구별해야 한다. 공동 보관된 고객 자산을 사업자의 파산재단에서 제외할 요건을 정하고, 고객별 장부와 실제 보관 잔액을 어떤 기준으로 대조하여 반환 범위를 확정할지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보관 자산이 부족한 경우에는 남은 자산을 고객들에게 어떻게 배분할지, 돌려받지 못한 부분은 파산절차에서 어떤 지위로 처리할지까지 함께 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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